조각가 미켈란젤로를 최상의 반열에 오르게 한 <피에타>. 수 많은 피에타 중 최고로 평가받는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그의 작품 피에타에 대해서 알아보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 건축가, 화가, 시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산치오와 함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이라 불린다. 조각 대표작으로 <피에타> 와 <다비드>가 있다. <피에타>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뜻이다.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담은 조각이다.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과 조각을 피에타라고 부르고, 그 중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가장 유명하다. 피에타가 걸작이라 불리는 이유는 섬세한 감정표현과 뛰어난 신체 묘사이다. 이 작품을 앞에서 보면 예수가 아닌 성모 마리아가 주인공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을 위에서 보면 예수의 모습이 완벽하게 보인다. 미켈란젤로는 예수가 관람자의 시선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설에 "이 작품은 신에게 바치는 것이니 인간의 시선으로 평가하지 말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성모…
그림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점묘법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그림 속에 숨어있는 사실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오늘은 그림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의 숨겨진 사실에 대해서 알아보자! ◆ 첫 째, 이 그림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그림은 색에 큰 초점을 맞췄다. 일일히 점을 찍어 그린 것이다보니, 원근감이 약해지고 인물들의 생동감이 다소 떨어진다. 따라서 이 그림은 멀리서 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또 이 그림은 큰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중·하층민들을 큰 화폭에 그리는 일이 상당히 드물었다. 그림을 그리는데는 2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준비 과정에서 40여 점의 스케치와 20개의 소묘를 남기며,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 이 그림은 회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당대에는 비평가와 수집가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작가 '쇠라'의 사망 후, 그의 어머니가 프랑스 정부에 이 그림을 기증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그림의 진가를 알아본 미국의 한 수집가가 1924년 미국의 시카고 미술관에 팔았고, 그림은 현재도 시카고 미술관에 소장중이다
화려한 옷을 입고 정면을 바라보는 남성, 털 코트를 입은 채 살짝 기대서 있는 또 다른 남성... 입은 옷만으로도 이들의 재력과 사회적 위치를 알 수 있다. 심지어 두 사람 사이의 테이블엔 지구본과 해시계, 악기와 책까지... 이들의 높은 학식을 과시하는 듯 보인다. 이 그림엔 어느 하나도 대충 그려진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치밀한 그림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바로 바닥에 그려진 알 수 없는 형상이다. 사실, 바닥에 그려진 알 수 없는 형상은 작가의 치밀한 계획 중 하나다. 감상법 또한 특이하다. 가로X세로 크기가 2m가 넘는 거대한 작품... 먼저 정면에서 보면 인물이 실제 크기로 그려져 있어서 위엄이 느껴진다. 그림의 오른쪽 한발 떨어진 위치에 서서 다시 한 번 작품을 보면, 알 수 없던 바닥의 형상이 제대로 보인다. 바로 해골이다. 고속도로 위에 쓰여 있는 글자처럼, 왜상의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이는 정해진 위치나 각도에서 봤을 때만 의도된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작품<대사들>에도 이 원리가 숨어있다. 작품 옆에 따로 표시된 위치에 서서 그림 하단부를 바라보면, 정면에서는 알 수 없던 형상이 해골로 변하는…
독자 여러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작가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 작가 유영국의 일생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였던, 1916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다. 그는 식민지 제국 문화의 중심지였던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 입학하면서, 추상미술을 접하게 된다. 그는 전위적 예술 운동의 최전방이었던 '무라이 마사나리'와 '하세가와 시부로' 등과 함께 자유미술가협회, 독립미술협회, 신조형예술그룹 등... 다양한 미술 단체와의 교류를 시도했다. 1941년, 그는 전위미술 탄압 중에도 계속 작품 활동을 시도했는데, 이때 경주 남산 불상을 소재로 한 콜라주 연작을 시도했다. 48세이던 1964년, 그는 모든 단체활동을 중단하고 개인 활동에 몰두했다. 그는 △1938년 제 2회 <자유미술가협회전>협회 최고상 △1984년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영국 작가는 지난 2002년에 작고했다. ◆ 작품세계 그의 작품은 '신사실파'에 속하는데, 사물을 마음에서 느낀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새로운 사실로 하는 것을 뜻한다. 그의 작품은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적인 조형 요소를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이런 요소를 통해 강렬한 에너
1992년 파키스탄 남부의 인더스 강 하류에서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이 유적지에는 죽은 자들의 언덕을 뜻하는 '모헨조다로(Mohenjo- Daro)'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그 이유는 이곳을 세운 드라비다인(Dravidian)들이 아리아인(Aryan)에 의해서 멸망당했기 때문이다. 모헨조다로 유적지는 1922년 인도인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영국 고고학자 '존 마셜(John Marshall)'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했다. 도시는 철저한 계획도시로 지어졌으며, 벽돌을 이용해 건물을 세웠다. 대형 목욕탕과 배수시설이 발견되었고,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모헨조다로 유적지에서는 인더스 문명을 증명해 주는 여러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유물은 2,000여 개나 되는 인장들이다. 이 인장들은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무역을 하던 상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인더스 문명이 주변국들과 활발하게 교역활동을 했음을 알려준다. 인장에 새겨진 그림과 글자들은 아직 해독되지 못했다. 인더스 문자는 4대 문명의 문자들 중, 아직까지 해독되지 못한 유일한 문자이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2500년경 원주민 드라비다인에 의해
여러분~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이라는 작품을 알고 있습니까? <시녀들> 이라는 작품은 스페인의 국민 화가라고 칭송받는 '고야'와 '피카소'도 이 그림의 연작을 여러 번 그렸을 정도로 엄청난 작품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 그림에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이 있는데, 하나씩 알아보자! 첫 번째, 거울은 그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 작품에서 거울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거울이 등장함으로써 그림을 위한 그림, 즉 메타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거울은, 그림에서 볼 수 없는 반대편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또 그림의 앞쪽까지 공간을 확대시킨다. 작품에 나오는 거울로 인해, 보여주는 선택지가 2개 이상 존재한다. 이는 캔버스 때문이기도 한데, 캔버스는 각도상 거울을 마주한다. 이 때, 거울엔 펠리페 4세 국왕 부부의 초상화가 보인다. 또 화가가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을 그릴 때, 펠리페 4세 국왕 부부가 놀러온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이 그림은 시간과 공간이 복잡한 시선으로 얽혀 있다. 이 그림은 화가가 서 있는…
천재 화가 '피카소', 입체파를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실제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금부터 '피카소'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아보자! 첫 번째, 피카소는 화가 '앙리 마티스'와 라이벌 관계였다. 미국의 문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부잣집 딸이었고, 돈 없는 예술가들을 도와주었다. 어느 날, 마티스가 스타인에게 초상화를 그려 선물했는데, 이를 보고 자존심이 상한 피카소가 더 멋진 초상화를 그려 스타인에게 바쳤다는 일화가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작업실에 놀러갈 정도로 친했다고 한다. 마티스는 피카소가 방문하면 "이 양반 또 아이디어 훔치러 왔네"라고 농담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두 번째, 피카소는 공산주의자였다. 피카소는 정치활동이 본인 예술 세계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944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반군국주의 성향이 강했는데, 국가와 이념을 넘어 전쟁 자체를 혐오했다. 그는 공산당원들과도 마찰이 있었는데, 공산당원들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 예로, 공산당원들이 스탈린의 초상화를 요구했다. 피카소는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려줬는데, 이해할 수 없게 그려서, 그들과의 사이가 더 멀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1665년 경에 그려진 초상화다. 이 그림에는 여러가지가설이 있는데, 지금부터 알아보자! 가설에 앞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작가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자.'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네덜란드의 황금기라고 불리던 1632년에 태어났다. 그는 21세의 나이에 '성 루가 길드'라는 화가조합에 가입했는데, 이 조합에 가입하려면 적어도 6년 이상 미술을 배워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기에, 그가 늦어도 15세 부터 미술을 배웠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1672년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짐으로, 그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그림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어렵기도 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약 35점으로 추정된다. 그는 생전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19세기 중엽에 재평가 되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릴만큼 아름답다. 작품에서는 비밀스러움과 신비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여러가지 가설들이 있다. 첫 번째, 그림에 그려진 소녀는 화가가 사랑했던 여인이라는 설이다. 화가의 다른 작품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특징으로, 작품의 소녀가 화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초상화는 한 사람의 외면적 모습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과 내면까지 담아내기도 한다. 초상화는 매우 간단한 듯하면서도 복잡한 의미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진 한 장이 때로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삶과 내면을 알려주는 '초상화'를 보는 일은 분명 뜻깊다."라고 한다. 2021년 4월 29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500여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세계를 빛낸 76명의 초상화를 전시하고 있다.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과 함께 준비한 특별전으로,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시런까지>이다. 이 전시회는 총 5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는데, △명성 △권력 △사랑과 상실 △혁신 △정체성과 자화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전시장 입구에는 초상화에 대한 설명 책자와 전체적인 전시 내용을 설명한 포스터가 비치되어 있다. 입구로 들어가면, 첫 번째 초상화의 주인공인 '셰익스피어'를 볼 수 있고, 그 밖에도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엘리자베스 1세', '에드 시런' 등... 유명한 인물의 초상화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는…
'황소'라는 작품은 우리나라의 화가, '이중섭'씨가 1953년경에 그린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품으로는 '싸우는 소', '서귀포의 환상'등이 있다. 그는 소를 주제로한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 중, '황소'는 그가 그렸던 다른 소그림들과 다르다. 빨간 배경, 소의 두상 등... 이중섭이 보통 그리던 전신의 소와는 차별화 된 느낌이다. 1. 화가 이중섭 화가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났다. 1937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 미술과에 입학하고, 재학중에 독립전과 자유전에 출품하여 신인으로 주목 받았다. 그리고 1945년에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와 결혼하여 2남을 두었고, 1946년에는 원산사범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 때 이중섭의 첫아이가 사망했다. 해방 후 북한이 공산주의가 되자, 창작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그러다 6.25 전쟁이 일어나서 부인과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지만, 그는 홀로 원산을 탈출하여 제주도에 안착했다. 하지만 생활고로 인해서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다시 올라왔다. 1953년에 가족들과의 잠시 만남을 끝으로 가족들과는 생이별했다. 그 뒤에도 가족들을 만나기를 염원했지만, 1956년에 정신이상과 영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