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7 (토)

한 시간의 삶이 유예되었다, 오상원 「유예」

이제 모든 것은 끝난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끝을 맺어야 한다. 끝나는 일초 일각까지 나를, 자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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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와 도구는 다른 것이오. 나는 포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확실히 호흡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오. 나는 기쁘오. 내가 한 개의 기계나 도구가 아니었다는 것,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간으로서 살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으로서 죽어 가는 것,이것이 한없이 기쁠 뿐입니다."

 

 

명확하고 차가운 음성이었다.

"좋소."

경멸적인 조소가 입술에 어렸다.

"이 둑길을 따라 똑바로 걸어가시오. 남쪽으로 내닫는 길이오. 그처럼 가고 싶어 하던 길이니 유감은 없을 것이오."

 

 

 

-책 「유예」의 내용 中-
 

 

 이 책의 주인공 '나'는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한 시간의 삶이 유예된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대장인 '나'는 군을 이끌고 북으로 진격하고 있었지만, 본대와 연락이 끊기고 부하들은 하나둘씩 죽어가고 있었기에 후퇴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끝없는 기아와 추위에 결국 여섯 명만이 살아남게 된다. 멀지 않은 곳에 인민군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무리하게 이동하다가 적의 공격을 받는다. '나'는 총상을 당한 선임 하사를 부축해 산으로 숨어들어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선임 하사마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낮에는 혼자 산을 돌아다니고 밤에는 눈에 파묻혀 숨어 자는 생활을 한다,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상태로 그저 남으로, 남으로 걷는다. 남으로 걷는 중 버려진 마을을 발견하고, 그 마을에 숨어들어간 '나'는 포로로 잡힌 국군이 총살 당하기 직전 눈이 쌓인 둑길을 걷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나'는 피살 당할 군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사수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지만, 곧바로 인민군의 공격을 받아 의식을 잃고 포로로 잡히게 된다.

 

 포로가 된 '나'는 소속 사단이 어딘지, 학벌이 어떤지, 미국에 대한 감정이 어떤 지 따위의 심문을 받고 전향할 것을 권유받지만, 응하지 않는다. 결국 삶에 대한 한 시간의 유예만을 얻게 된다. 유예가 끝나면 마을에서 보았던 국군처럼 총살당할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흰눈이 내리는 둑길, 그토록 가고 싶던 남쪽을 향하는 둑길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간다. '나'는 내가 죽으면 북한군은 멋적게 총을 다시 거꾸로 둘러메고 본부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화롯불에 손을 녹이며 담배를 피우고 기지개를 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자기 자신이 누군지 잊어선 안된다고 다짐하며 아무것도 아닌 죽음을 맞이한다. 

 

  「유예」는 '오상원' 작가의 첫 작품으로,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시점과 시제가 혼재되어 있어서, 여러 번 곱씹어 읽어 볼 필요가 있다. 독자는 이 소설을 통해서, 전쟁에 의한 갈등과 비극에 대해 이해할 뿐만이 아니라, 죽음의 의미에 대해 고뇌하게 된다. '나'는 죽음을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해 무감하지만, 한편으론 의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나'는 언제 목숨을 잃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고뇌하며 죽음까지도 자신의 뜻에 따라 택하는 주체적인 인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총살 직전의 국군 포로는 자신이 이 전쟁을 위해 이용되다 버려지는 사람 죽이는 기계가 아닌, 호흡하고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죽음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격했다. 선임 하사는 "역사는 인간이 인간을 학살한 기록이며, 적의 심장에 총구를 겨눌 때면 이런 역사를 조각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가해자이기도 하며, 피해자이기도 한 이들의 사상은 그저 틀렸다고 반박하기 어렵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나'의 분열된 내면을 바라보며 인간 존재의 가치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야 하고, '나'가 죽음을 맞이하며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까지 되뇌였듯이 어떠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을 더해본다.